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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속의 불꽃을 발견하라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나는 내 인생의 책이 스테디셀러가 되었으면 좋겠다. 삼류소설이기보다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였으면 좋겠다. 가십거리를 담은 잡지이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감동과 유익을 주는 양서였으면 좋겠다. 인생이 한 권의 책이라면, 오늘 나의 하루는 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을 것이다. 어떤 글이 써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인생의 책을 아무렇게나 쓰겠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정성들여 쓴다. 단 한 번 밖에 쓸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짧지만, 멋진 스토리를 담은 삶이라면 한 번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시간은 금이다"라는 말은 틀렸다. 이 말은 시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말이다. 시간은 금보다 소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상적인 개념(시간)을 물질적 가치(금)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라도 시간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다면 굳이 시비를 따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시간은 금보다 소중하다는 생각을 놓치고 싶지는 않다.

시간 관리를 잘 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의 소중함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젊음은 야속하다. 속절없이 지나가고 난 다음에야 그 소중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가수 이상은씨의 노래 중에 다음과 같은 노랫말을 담은 <언젠가는>이라는 곡이 있다. 내가 참 좋아하는 곡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이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젊음이 소중했음을, 사랑이 소중했음을 언젠가 깨달아서는 안 된다. 지금의 사랑이 소중함을, 지금의 젊음이 소중함을 바로 여기에서 깨닫고 누려야 한다.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을 때 잘 해야 한다. 정 안 되면 오승근 씨의 <있을 때 잘해>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어서라도 사랑하는 이에게 잘 해야 한다. 있을 때 잘하자.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 하자. 흔들리지 말고. 젊음을 아는 청년이 되어 지금의 행복을 붙잡자. 여러분의 나이가 30이든, 40이든, 50이든, 60이든, 아니면 그 이상이든 바로 지금의 당신이 청춘임을 명심하라. 이미 알고 있겠지만, 다시 한 번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라는 시를 읽어보자.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라도 늘 푸른 청춘이네”

사무엘 울만이 <청춘>을 지었을 때, 그의 나이는 78세였다.
소중한 사람이 죽거나, 젊음을 다 보내고 난 후에야 우리는 그 소중함을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늦다. 바로 지금,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그 언젠가가 2100년보다도 훨씬 이점임을.
2007년 현재 30살인 내가 60살이 되는 때는 2060년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잠깐 계산해 보니 2037년만 되면 60살이 된다. 무척이나 놀랐다. 친구에게 “네가 60살이 될 때가 몇 년도인지 말해 봐”라고 하니, 무심결에 2060년 아니냐고 대답하는 녀석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생각만큼 길지도 않고, 많지도 않다. 이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여 잘 관리하지 못한다면, 그 짧은 인생마저 보람되게 보내지 못할 것이다. 인생이 정말 짧은지 물어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짧다고 생각한다. 유자효 시인의 <인생>이라는 제목의 시를 한 번 읽어보라. 아주 짧은 시니까 정성들여 읽자.

  늦가을 청량리
  할머니 둘
  버스를 기다리다 속삭인다.

  "꼭 신설동에서 청량리 온 것만 하지?"

짧게 끝나서 어리둥절하신 분은 이 시의 제목이 <인생>임을 상기해 보라. 신설동에서 청량리까지의 거리는 지척이다. 지하철역으로 따져도 두 정거장이다. 할머니 두 분이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니 불과 신설동에서 청량리까지의 거리로 비유될 만큼 짧았다고 회고하는 장면이다. 나는 이 시를 아나운서 이계진님의 강연 때 들었는데 감동으로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생이 길지 않기에 우리에게는 그 인생을 낭비지 않는 시간 관리 기술이 필요하다.

짧은 인생이라고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지만,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다.”
인생의 짧음을 느끼는 자들은 세월의 덧없음에 허무함을 느낄 뿐이다. 생각이 결여된 감상은 종종 우리를 정서적인 자해 행위로 몰아간다. 서른 즈음이면 머물러 있는 줄 알았던 청춘이 점점 더 멀어져간다고 흐느낄 것이 아니라, 떠나간 내 사랑이 어디에 있냐고 안타까워 할 것이 아니라, 인생의 황금기가 시작되는 것에 환호하며 승전가를 준비할 일이다.

유자효 시인의 <인생>을 들려드린 이유는 인생의 덧없음에 대하여 감상적으로 느끼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생이 길지 않음에 대하여 한 번 생각해 보자는 게다. 젊음이 속절없이 지나간 다음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생을 보다 찬란하게 살자고 권고하고 싶은 게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니 한 해가 저물어가는 즈음에 우리의 삶을 한 번쯤 돌아보자는 게다.

시간 관리를 잘 하기 위하여 자투리 시간 활용법을 익히거나 미루는 습관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본질적인 접근이 아니다. 시간 관리는 본질적으로 목적 지향적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시간이라는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운용하는 기술이 시간 관리이기 때문이다. 시간 관리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향한 시간 관리야말로 가치 있는 것이다.

시간 관리에 대한 처방은 이제 부지런해야지, 라는 다짐이 아니라 자기 내면 속의 불꽃을 발견하는 것이다. 내면 속의 불꽃이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열정적으로 타오를 수 있다. 한비야님은 이 불꽃에 대한 질문으로 “무엇이 네 가슴을 뛰게 하는가?”라고 물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인생의 사명을 발견한 이후로 단 하루도 지루한 날이 없었다.”고 했다. 불꽃은 비전이요, 꿈이다. 사명이요 목적이다. 이 불꽃을 가슴 속에 지니는 것이야말로 시간 관리의 핵심 과업이다. 여러분에게는 불꽃이 있는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생각만 해도 전율이 일어나는 그런 불꽃을 가슴 속에 품고 있는가? 직장인들이 가슴 속에 품어야 할 것은 사직서만이 아니다.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불꽃도 품어야 한다. 만약 당신에게 불꽃이 없다면, 앞으로 일 년 안에 이루고 싶은 꿈의 목록을 작성해 보라. 당신을 전율케 하는 목표가 나올 때까지 작성을 멈추지 마라.

시간 관리의 목적은 빠른 시간에 주어진 일을 완료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다. 많은 것을 성취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것이다. 시간 관리의 핵심은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찾아내어 거기에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에 욕심을 내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삶에 여백을 만들고 여유를 조각할 수 있다.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내어 그 이유에 답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시간 관리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스콧 서나우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하루를 24시간으로 정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그 정도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셨음에 틀림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려고 했던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할 것이라고 기대한 모든 일도 다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가 할 것이라고 기대한 모든 일들은 언제나 다 해낼 수 있다."
시간 관리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여 효과성을 높이는 기술이다. 많은 일을 보다 빨리 처리하는 효율성은 시간 관리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존재 이유를 다른 말로 ‘사명’이라고 한다. 사명 지향적인 시간 관리를 해야 여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과업 지향적인 시간 관리로는 여유와 평안을 누리기가 쉽지 않다. 직장인들의 일감 바구니는 늘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사명 지향적인 시간 관리는 자신의 재능과 기질적인 특성, 그리고 주어진 시간을 고려한다. 과업 지향적인 시간 관리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고려한다. 결과적으로 사명 지향적인 시간 관리자만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삶을 만들어 가며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지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라.
  “여러분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정말로’이다.)
  “직장에서의 당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가 당신에게 거는 기대가 무엇인가?)
  “가정에서의 당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들에게는 어떤 역할을 해내고 싶은가?)
  “인생에서의 당신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 삶의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가져야 한다. 그 답변들을 삶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시간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무엇을 위하여 시간 관리를 할 것인가가 분명해야 한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들에 대한 확신이 굳건해야만 사명 지향적인 시간 관리를 방해하는 것들에게 분명히 거절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분명한 No!는 확신 있는 Yes!에게서 나온다.

참 열심히 사는 대학생의 이야기를 해 보자. 그녀는 늘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열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언제나 열심히 책을 읽고, 강연 장소에서는 최선을 다해 배움에 임한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하는 얘기는 “넌 왜 그렇게 바빠?”이다. 부모님은 “너는 내일 아침에 죽을 사람처럼 왜 그렇게 바쁘게 지내냐?”고 하신다. 피곤해 보이는데도, 그녀는 괜찮다고 하며 오늘도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부지런히 무언가를 한다.

하루를 너무나 바쁘게 보내어 쓰러지듯이 침대로 가서 푹 고꾸라져 잠들고, 잠자리에서는 몸이 뻐근하여 이리저리 뒤척이는 삶은 시간 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여유도 없고, 운동도 못하는 삶은 시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느긋하게 살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급함이 일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조바심으로 인해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질 때, 우리는 삶의 균형을 생각해야 한다. 죄책감 없이 쉬는 법을 익혀야 할 때인 것이다.

시간 관리를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의 노예가 되어 여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오늘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무조건적으로 거절하거나, 삶의 여백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없이 무언가에 매달려 있다면, 시간 관리 기술을 아직 완전히 터득하지 못한 것이다. '여유와 쉼'이라는 눈동자를 그려 넣음으로 '시간 관리'라는 용의 모습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여유와 쉼은 시간 관리의 화룡점정이다.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욕심을 잔뜩 안은 무리한 계획은 집어던지고, 사용가능한 시간 중에 50%만 투자하면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업무만 계획하라. 이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자신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느림의 철학'을 가져라. 빠른 속도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주는 기쁨과 여유와 만족 그리고, 느림이 주는 기쁨을 동시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만족)을 누리는 것이 곧 하나님의 선물이다.(전 3:13) 일하지 않는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음을 경험하라.

당신의 바쁜 삶에 쉼표를 하나 찍어라. 그리고 시계를 벗어 던지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현재를 마음껏 즐겨라. 쉼표로 인해 재충전된 당신은 삶의 여유가 주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 관리는 ‘여유로움’으로 완성됨을 잊지 마라. 바쁜 삶의 쉼표 하나를 찍어 보라. 작지만 소중한 그 쉼표 하나가 당신의 인생을 보다 넓고 깊어지게 할 것이다.

‘공산당 선언’의 해제에서 이진우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나의 실존 근거가 나에게 있지 않고 남에게 있는 것이 노예적 삶이라고 한다면, 현대인들은 과거의 노예들만큼이나 노예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진우의 글을 읽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노예의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

처음에는 나 역시 이렇게 생각했지만,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정말 노예들의 삶만큼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물어볼 일이다. 나의 실존 근거가 누구에게 있는지 돌아보는 것에 앞서서 내가 타성의 노예, 게으름의 노예, 나쁜 습관의 노예가 아닌지 돌아보자는 말이다. 게으른 자들은 결국 빈곤에게 따라잡히고 말 것이다.

나의 선생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다 밤이면 힘들어 쓰러져 자는 노예들도 있다. 하나의 전문가가 나오려면 적어도 10년은 잠이 모자라야 한다."

아! 나는 얼마나 무기력하게 살아왔던가? 내 삶에 주어진 '하루'라는 선물을 얼마나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낭비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던가! ‘여유’가 시간 관리의 화룡점정이지만, 게으른 사람들에게는 먼저 성실함과 치열함을 회복하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선생님의 ‘잠이 부족한 10년’의 개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동시에, 깨어 있는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의 철학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지미 카터의 자서전의 제목을 상기해 본다.
  “Why not your Best?"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컨설턴트 이희석

E-Mail : hslee@eklc.co.kr

Blog : www.yesmydream.net

“짧은 인생은 시간의 낭비에 의해 더욱 짧아진다.”
- 사무엘 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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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abo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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