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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유종현
MBC 보도제작국 시사영상부장
 
  입사 초년병시절 나는 술 담배를 입에 대지 못하는 모범사원(?)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자기 방식대로만 살아가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기 시작했다. 한 해 두해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후배사원들이 입사하자 생활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모 선배는 술도 못하는 좀생이’라는 표현이 우연히 내 귓가를 스쳤고 나는 생각을 달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정면 돌파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입사 만 3년 차가 되던 12월 31일이었다.

차장님, 오늘은 특별히 잔을 하나로 하시지요
  “김 차장님 오늘은 제가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술이나 한잔 하시지요.” “어 이사람 자네가 웬일이야. 술 못하잖아...”
  당시 김 차장은 일과 술에 관한한 후배들의 우상이었다. 해병대로 월남전에 참전했던 경력도 그렇거니와 그동안 부원 누구와 겨뤄서도 술을 져본 일이 없었던 분이었기에 나의 음주도전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즐거워하셨을 지도 모른다.
  그날 저녁 회사 일을 마무리하고 차장님 댁에 도착했을 때는 아홉시 뉴스데스크가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처음 뵙는 사모님께 정중한 인사를 드리고 저녁상 겸 술상을 받았다.
  “차장님, 오늘은 특별히 잔을 하나로 하시지요.”
  “그건 또 무슨 뜻이지?”
  “그래야 공정한 게임이 될 테니까요.”
  “어이 이 사람 보게, 자네 이제 제법이구만.”
  그날 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이어지기를 무려 9시간. 새벽이 다 되어 창밖이 훤해져서야 나는 간신히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택시를 잡고 서둘러 회사로 출근하였다.

술 못하는 좀생이 오명을 벗어나고자 누군가를 K.O.시키고
  그런데 술 마시고 절대 회사에 지각해본 사실이 결코 없으셨다던 그 분께서 그 날만은 오후가 되도록 자리가 비어 있었다. 나는 설날 휴일스케치를 하다가 걱정 반 쾌감 반으로 다시 차장님 댁에 들렀다. 아니나 다를까 안방 문을 여는 순간 이불을 쓰고 누워계시던 그 차장님께서 ‘아이고 속 쓰려, 아이고...’ 하시면서 냉수를 찾고 계셨다.
  그 일 이후로 그 분께서 회사 동료 선후배들에게 나의 음주실력을 가감 없이 전하셨고, 그래서 나는 술도 못하는 좀생이라는 오명에서 당당히 벗어날 수 있었다. 잔 하나로 차장님을 이긴 최초의 승자로 공인을 받은 셈이었다. 그런데 이제 20년이 넘었으니까 내가 진실을 말하자면 꼬박 석 달 열흘 동안 인삼녹용으로 몸을 가꾸면서 그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을 누군들 알 수가 있었으랴. 술 마시기 석 달 열흘 전부터 인삼녹용을 복용하지 말란 법은 어디에도 없지만 사실 반칙이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기고도 진 게임이었다. 술 못하는 좀생이 오명을 벗어나고자 누군가를 K.O.시키고 나를 일으켜 세우려는 가련한 욕망이 세상을 험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한 잔이라고요? 그러면 아주 큰 잔에 독한 술이었겠군요!
  ‘술’하면 생각나는 것 중에 또 하나가 음주단속현장의 풍경이다. 서울에서도 매년 연말에 흔히 목격되는 것이 대로상에서 음주운전자와 단속경찰관과의 실랑이다. “얼마나 드셨습니까?”경찰관의 상투적인 질문에 한결같은 음주운전자들의 답변은 “맥주 딱 한잔 마셨다니까요.”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측정기가 틀렸다느니, 왜 경찰이 반말을 하느냐는 둥 시비가 시작되고 언성이 높아지다가 심지어 단속경찰을 매달고 달아나버리는 경우까지 있다. 잘잘못을 떠나 양자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마는 험악한 신세를 벗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좀 더 승승의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취재사례를 하나 들어 볼까한다.
  산타마을이 있는 동토의 도린결 핀란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시스템을 갖춘 나라로 알려진 이 나라에서는 얼어붙은 호수에서 스키와 낚시도 즐기고, 또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속에서 사람들은 천연사우나를 즐기며 낙원처럼 살아가지만 그들만의 어려움도 없지 않다.
긴 밤과 춥고 긴 겨울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주말이나 여가에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술을 즐기며 살아간다.
  어쨌든 추위 탓이라고는 하지만 음주운전이 심심치 않게 적발되는데 그들이 갖고 있는 벌금제도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일괄적으로 일정한 액수를 범칙금으로 부과하고 있지만 그들은 소위 소득에 따라 벌금액수에 차등을 두고 있다. 그들에게도 역시 음주운전단속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음주운전자가 단속경찰관에게 적발되는 순간이었다. 누구에게나 유쾌할 것 같지는 않은 순간이지만 핀란드 경찰은 조금 달랐다. 경찰과 음주운전자가 나누는 대화에는 여유 있는 위트와 재치가 번뜩이고 있었다.
  경찰이 음주 측정한 기계의 수치를 위반자에게 보이며 부드럽게 말을 건다.
  “만취하셨습니다. 운전대에서 내리시지요.”
  운전자는 크게 거부하거나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경찰지시대로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경찰차로 옮겨 타며 비틀거리는 몸을 힘들게 가누느라 애쓴다. 경찰이 위반자를 경찰차에 태우면서 한마디 더 묻는다. “얼마나 드셨습니까?”
  음주운전자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투적인 답변을 한다. “딱 한잔 마셨습니다.” 그래도 경찰은 좀처럼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위반자에게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흔적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한 잔이라고요? 그러면 그 잔이 아주 큰 잔이었겠군요. 그리고 술도 아마 독한 술이었을 테고요.”
  먼저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경찰의 주장을 설득시키려는 흔적이 역력하지 않은가. 음주운전자가 주장하는 “딱 한잔”을 인정하고, 그렇다면 “아주 큰 잔으로, 그것도 아주 독한 술 이었겠군요”하는 위트로 승승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브라운은 졌지만 결국 이긴 자
  이제 승승의 모델로서 지고도 이긴 자 브라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학생들이 해외유학을 많이 떠나고 있다. 그러나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동양인이 유학한다는 것이 매우 희귀했던 시절, 기쿠치라는 일본학생이 항상 1등을 독차지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학기말시험을 앞두고 그가 독감에 걸려 결석이 계속되자 항상 2등을 도맡아 하던 브라운이 1등 할 수 있는 찬스가 찾아온 것으로 여기고 가뜩이나 자존심이 상해 있던 영국학생들이 은근히 브라운의 1등 탈환을 응원하고 있었다. 마침내 기말시험 날, 기쿠치는 병색이 짙은 초라한 모습으로 간신히 시험을 치르고 돌아갔다. 그리고 얼마 후 게시판에 기말성적이 발표되는 날이었다. 이번에야 말로 브라운이 그 일본학생을 제치고 다시 선두를 탈환했으리라 기대하며 영국인학생들이 게시판 앞에 몰려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완전히 예상을 뒤엎고 그 일본학생 기쿠치가 또다시 1등을 차지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런 기쿠치가 또 1등이야.” 바로 그 때 기쿠치가 게시판 근처로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서툰 영어로 말하는 그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The reason that I was able to be in the top of the class even when I was ill is all because of Brown. He came to my room everyday and repeated the exact lecture he had received in class for me." (내가 병석에 있으면서도 또 1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브라운 덕분입니다. 브라운은 매일매일 그 날의 강의를 가지고 내 방을 찾아와 교수님과 똑같은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브라운은 졌지만 결국 이긴 자로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승의 모델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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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abo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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