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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조직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 특히 수년간 성공적이었던 조직이었다면- 사람들은 그 조직의 태만함, 오만함 그리고 거대한 관료주의를 탓한다. 이는 그럴듯한 설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적합하지 않은 혹은 틀린 설명이다. 초기 형태의 컴퓨터가 도입된 이래로 IBM에서는 컴퓨터가 전기와 같은 길을 걷게 되리란 것을 하나의 신념처럼 여기고 있었다. 즉 중앙 스테이션, 여러 사용자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한층 더 강력해진 대형 고속 컴퓨터에 컴퓨터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대형 고속 컴퓨터를 중심으로 한 정보 시스템이 막 실현될 즈음, 두 청년이 퍼스널 컴퓨터(PC)를 최초로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의 컴퓨터 제조업자들은 퍼스널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통해 보건대, 성공적인 대기업들은 퍼스널 컴퓨터의 갑작스런 등장과 같은 뜻밖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쉽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형 고속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른 회사들 모두의 매출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면서 사상 초유의 이익을 내고 있었던 IBM도 다른 회사들처럼 행동할 뻔하였다. 실은 ‘그랬어야만’했다. 하지만 반대로 IBM은 즉시 퍼스널 컴퓨터를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였다. 거의 하룻밤 사이에 IBM은 이미 올바른 것으로 증명을 받은 오래된 정책들과 규칙들을 폐기하였다. 그리고 두 개의 경쟁팀을 만들어 좀 더 간편한 퍼스널 컴퓨터를 개발하도록 하였다. 수년 후 IBM은 세계 최대의 퍼스널 컴퓨터 제조업체가 되었으며 퍼스널 컴퓨터 업계의 표준 설정자가 되었다. | ||
- 변화리더의 조건 발췌 & 각색 | ||
77년에 폐자재를 이용한 석고보드를 최초 개발해 건자재업계 일대 혁신을 몰고 온 벽산그룹은 1983년에는 상호를 주식회사 벽산으로 변경하면서 건설업계의 최고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벽산의 역사는 국내의 건자재 역사를 대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1997년 말 국내에 불어 닥친 IMF 위기로 인해 벽산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벽산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오로지 생존하는 것만 생각하라.’는 신념이었다. 벽산은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택한다. 벽산그룹은 IMF를 맞기 이전에 벽산의 핵심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석고보드 공장을 버렸다. 그리고 경쟁자와 경쟁하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건축자재 판매업이 아닌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공간 제공’을 벽산의 사명으로 삼고, 이 전략에 따라 벽산은 건축자재뿐만 아니라 실제 쾌적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는 서비스와 시스템을 패키지화해서 공급했다. 이러한 혁신 뒤, 벽산은 2002년 10월 워크아웃을 6년 만에 졸업하고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하였다. | ||
- Peter Drucker Societ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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