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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임자
한국리더십센터 전문교수
 
  9월 말과 10월 초, 보름 정도 걸려 히말라야 트레킹에 다녀왔다. 결과부터 말하면, 나는 4,000m급 몽라에서 산행을 접어야 했지만, 같이 간 동료들은 5,300m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왔다.
  보통 상당히 용의주도하게 사는 편인 데 비해 정작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서울에 있는 600m 정도의 산을, 그것도 한 달 정도 대여섯 번 오른 것으로 위안을 삼고 “어떻게 되지 않겠어?” 하였다. 이쯤 되면 용감한 게 아니라 무식하다 해야겠지.

루클라에서 팍딩 거쳐 남체 바자르까지

  해발 2,800m의 루클라.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로 40분. 모든 트레커들의 히말라야 등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 여 걸려 이곳까지 걸어 올라오기도 한단다. 높이높이 올라가는 것도 달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겠으나, 마을과 산의 경계를 가르며 초입부터 샅샅이 훑어 올라가는 것도 의미 있는 탐험이겠다 싶다.
  초가을의 훈훈한 날씨를 뒤로 하고 서울을 떠난 게 바로 며칠 전인데, 멀리 가까이에 우뚝우뚝 눈 부신 흰 산봉우리가 시야에 들어오자 가슴은 사뭇 쿵쾅거렸다. 모두가 6,000m가 넘는 산들이라고 한다. 물론 내가 갈 곳은 눈 덮인 그곳이 아니었지만.
  유명한 알피니스트로, 이미 사하라 사막 250km 횡단에 시각장애인을 인도하여 다녀왔고, 북미대륙 최고봉(6,194m)이라는 알래스카의 매킨리를 등정한 김인백 교수, 그는 사하라로 떠나기 전에는 1년 동안 매일 20km를 달리며 심신을 단련했다고 한다.
  월남전에 참전, 지략과 깡다구로 인해 첨병 역할을 했던 방영원 교수, 한 번 한다면 하고 만다는 그는 히말라야 출발 3개월 전부터 매일 1시간 정도 파워 워킹으로 몸을 단련하며 투지를 활활 불태웠다고 한다. 나의 동행은 이처럼 멋들어지게 ‘준비된 사람’들이었다.
  첫날의 산행은 루클라에서 2,600m의 타데코시를 거쳐 역시 2,600m의 팍딩으로 내려가는 길. 가끔은 오르막길도 있었지만 그리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뭐, 이런 정도라면야……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오르막길이라 한들……’ 나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큰 소리로 시조 한 수를 읊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산만 보이는 곳. 그 깊은 산 속에 우렁찬 폭포소리를 내며 내내 흐르는 도도한 강, 그 많은 물은 도대체 어디서 흐르는 걸까? 4,700m 고지의 ‘낙숨바’ 빙하에서 흘러내린다는 강물은 우유빛이다. 이름 하여 둣고시, ‘밀키 리버(milky river)’라는 뜻이란다. 강을 가로지르는 곳마다, 길다란 철제 흔들다리가 놓여 있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다잡고 건너기 몇 번, 어느새 나는 그 흔들림을 즐기고 있었다.
  다음 날, 세르파의 수도이며 에베레스트의 관문인 3,400m의 남체 바자르에 올랐다. 모든 트레커들이 이곳에서 기후 적응을 위해 하루쯤 쉬며 인근의 세르파 박물관과 사가르마타 국립공원 등을 돌아보게 된다. 상주 인구는 약 400명. 그러나 유동인구가 워낙 많아 1,200여 명까지 되기도 한다. ‘기후 적응’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것이 필요함을,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뼈가 꺾이는 경험을 한 나 같은 사람은 알 수 있다.
  팍딩에서 남체까지의 800m 등정은 유난히 거칠고 오르내림이 심한 길인데다 2,000m 급에서 3,000m 급으로 오르는 데서 오는 산소 결핍까지 겹쳐, 수없이 주저앉았다 다시 일어나기를 거듭해야 했다. ‘설마’가 사람 죽이는, 그러나 포기라는 단어는 아직 생각지 않던, ‘오늘 힘든 만큼 내일부터는 이력이 붙겠지’하는 복잡한 생각이 얽히는 날이었다.?
  산을 잘 오르는 사람도 고지 적응은 힘들고, 고지 적응 경험이 있는 사람은 산도 잘 못 오르고 고지 적응도 못하는 동행 때문에 힘 드는 것이 에베레스트 트레킹의 어려움인 것 같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방에서, 밤새 끙끙 앓는 내 신음과 ‘악!’ 하고 고통을 내뱉는 소리, 그리고 쾅쾅 벽을 치는 소리에 한 잠도 못 잤다는 김교수는, 이런 나와 역시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 방교수 때문에 ‘이러다가 히말라야에서 두 분 OO 치는 거 아냐?’ 했다고 나중에 고백한다.
  남체에서의 기후 적응이라는 것을 한 후, 종일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속을 뚫고 몽라로 향했다. 이 길에서 나는 완전히 탈진하고 말았다. 말도 못 하겠고, 발은 천근만근 무겁다. 나를 끝내 참아 주고 기다려주던 동료들과 포터들 보기에도 너무 미안해 드디어 나는 이곳에서 포기를 선언했다. 포기도 선택이니까.

산 속에서의 조용한 시간들

  두 분 교수들이 베이스캠프에 다녀오는 닷새 동안, 이틀은 몽라의 로지에서 끙끙 앓기만 했다. 여전히 비는 억수로 쏟아지고 나의 컨디션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나를 위해 남겨진 포터 락파와 함께 남체로 내려왔다. 깨끗하고 정감 있는 문라이트 로지에서의 사흘은 책 읽고 글 쓰고, 눈 덮인 산과 마을을 바라보며 내 삶에 작은 전기를 가져올 몇 가지 결단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장이 서는 곳이라고 해서 ‘바자르’란 이름이 붙은 남체 바자르. 히말라야의 여러 종족들이 블랙 야크에 가득 물건을 싣고 와 사고 파는 곳이다. 워낙 먼 곳에서 야크와 함께 걸어서들 오기 때문에 장은 새벽에 서서 정오 무렵엔 파장이 된다. 널따란 장터를 상상하고 갔건만, 아하, 이곳은 깊은 산속이지! 좁은 산 언덕길을 장터 삼아 계단식으로 장을 이루는 모습이 사뭇 산간마을의 장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그곳에 가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또한 에베레스트 정상의 등정 모습들이 하얀 눈과, 두꺼운 옷, 그리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걸음들인 데 비해 베이스캠프까지의 트레킹이 한가롭고 여유로워 보이는 것도, 대개 겨울을 피하고 황금기를 택하는 날짜부터 다르기 때문임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이전에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할 때 도전 혹은 정복이란 말을 썼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이 어떻게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에 도전한단 말인가, 하여 단순히 탐험 혹은 산행, 등정 등의 말을 쓰는 것 같다. 나는 등정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
  이 다음 이곳에 다시 오면 - 사실은 다시 오고 싶다 - 좀더 시간을 여유 있게 가지고, 조금 걷고 많이 쉬며, 이곳의 분위기를 맘껏 즐기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때로 사색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즐기는 커피는 집에서 가지고 와서 마시면서 그렇게 푸욱 젖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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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deabox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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