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라는 탤런트 겸 가수 신신애의 노래가 한참 뜬 적이 있다. 그 노래는 ‘세상 돌아가는 일은 종잡을 수 없으며 짜가(가짜)가 판친다’는 것이 주제다. 멜로디와 신신애의 우스꽝스런 춤을 빼고 가사만 훑어보면 사실 심각한 세상 풍자시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TV에 나오는 그 노래를 재미있어 하며 깔깔 웃는다. “맞아! 세상은 요지경 속이지…”하며.
요지경을 당장 분해해서 분석해보면... 정말 세상은 요지경 속일까? 세상은 정말 알 수 없는 일들로만 가득 차있는 걸까? 언뜻 생각하면 그렇기도 하다. 허나 한번만 더 생각해보자. 무언가를 알 수 없을 때 “알 수 없어!”라고 포기하면 그 순간부터 알 수 없어진다. 그러나 “아니야 알 수 있어, 알아 봐야지!”라고 결심하면 그 순간부터는 알 수 있을 때까지만 모를 뿐이지 언젠가는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요지경을 당장 분해해서 확대경과 반사거울과 물건들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나면 요지경을 들여다봤을 때 종잡을 수 없는 현상이 왜 있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만들어진 요지경을 통해 보이는 현상만이 세상이라고 단정해 버리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요지경 속”이 되는 것이다.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옛 사람들에게 세상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알게 된 일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인류가 “세상은 알 수 없어!”라고 포기하고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신의 뜻대로 하소서“ 라며 수동적인 삶을 살아왔다면 아직도 우리는 원시적인 생활에서 머물러 있을 것이다. 세상은 모든 만물이 상호작용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는 현장이다. 따라서 인간은 왕성한 호기심으로 그 상호작용을 잘 관찰하고 또 실험을 반복하여 일정한 법칙을 얻어내서 지금만큼 세상을 많이 알게 되었다. 오래 걸렸지만 가장 알 수 없는 신비한 세계였던 ‘생명의 세계’도 복제과학의 발달로 그 신비함이 벗겨진 셈이다. 그러므로 알 수 없는 요지경 속 같은 세상은 사실은 알 수 있는 것이며 당연히 우리의 삶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력도 없이 단번에 세상과 인간의 삶을 알 수는 없다. 세상 이치를 깨달았다는 도인도, 신의 은총으로 세상을 알 수 있게 됐다는 종교인도 단숨에 세상을 알게 된 것은 결코 아니다. 끊임없이 알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서 나름대로의 ‘앎을 터득’한 것이다. 즉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7H, 가장 인간적인 삶의 이정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원제는 ‘Seven Habits of Highly Effective People’이다. ‘고도로 효과적인 사람들’ 이란 뜻을 '성공하는 사람들'로 번역한 것은 약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라 하면 소위 ‘출세한 사람들’과 같은 의미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7Habits'을 실천하면 성공하여 이름을 날리는 출세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7Habits' 프로그램이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세에 이르는 길을 개인에게 가르치고자 고안된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세상 일 중에 가장 어려운 일을 실천하여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을 체계화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실천에 따른 개개인의 노력으로 인생에서 자기 성취의 기쁨을 얻도록 하려는 ’가장 인간적인 삶의 이정표’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인간적인 삶’을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 프로그램을 통하여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게 얻어진 성공과 출세는 이 프로그램의 실천을 통해 얻어지는 부수적인 결과일 것이다. 그만큼 7H은 현실적이면서도 도덕적이고 심지어 종교적이기까지 해야 하는 경건한 삶의 실천을 당당하게 요청한다. 그래서 세속에 물든 나로서는 ‘실천의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까지 터득해 온 내 나름대로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하며 완벽한 실천을 위해서는 ‘종교적인 애타심’까지도 필수적인 인성적 요소로 내재되어 있어야 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의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필자는 대학 때 철학을 전공했고 종교도 기독교와 불교를 어줍잖게 섭렵하였다. 세상과 인생에 대해 나름대로 사색과 번민을 꽤 오랫동안 경험한 편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의 교육을 받기 전까지 확고한 인생의 목표를 확립하지 못했었다. 격언 하나 벽에 써 붙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확실하다. 인생에 있어서 '나의 사명'을 구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동안 나의 인생은 '세속적인 성공과 출세'를 암암리에 지향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실천을 계획해 놓지도 않았으면서 바라고만 있었던 것이다. 즉, 우연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그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교육 이후 필자는 허욕을 버렸다. 그리고 실제적인 욕망을 달성하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계획을 세우고 실천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면서 동시에 늘 최선을 다했느냐는 자기 점검을 통해 일신 우일신의 자세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이 프로그램의 실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실천해 나가고자 하는 의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함으로써 ‘지금보다는 더 행복한 인생’을 뒤로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프로그램의 실천을 해 나가면서 아내와 자녀들에게도 권할 생각이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교육의 기회를 갖도록 권장해서 나름대로의 삶의 지표와 구체적 실행방안을 강구하게 할 작정이다. 필자가 본사의 담당부서에 이 프로그램의 교육을 확산시키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 지난 달 교육일정에 본사의 간부급이 3명이나 책정되어 있음을 알고 무척 반가웠었다. 모쪼록 많은 직원들이 이 교육을 통해 거듭 태어나는 좋은 삶을 꾸려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